완주 습관
예술가들에겐 신작 두려움이 있다. 특히 흰 캔버스는 꽉 찬 것보다 주저함의 시간이 길다. 어렵게 선들이 그려지고 색이 칠해지다 보면, 어는 순간부터 ‘이게 되겠다’는 확신 또는 ‘망했다’는 감이 온다. 그 감은 설렘 또는 낭패감이 되어 예상을 현실로 만든다. 좋은 감은 과정부터 즐거우나 낭패감은 계속해야 할 동력을 멈추게 한다.
최근 작가들을 보면 실패가 예상되면 도전조차 하지 않거나 작업을 하던 중이라도 멈추는 경우가 더러 있다. 실패가 뻔히 보이는 일이라면 굳이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중도 포기’는 쉽게 습관이 된다.
흔히들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고 한다. 이런 경우 다시 도전으로 이어진다. 실패를 보완할 실마리를 찾았을 수도 있고, 머리로는 ‘망했다’로 결론을 내렸으나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나 같은 경우, 손이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데 예술가에게 손은 도구일 뿐 아니라 스스로 동력을 가진 생명체이다.(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손이 움직이면 머리가 따라간다. ‘그래, 어차피 망한 거, 해 볼 거 다 해 보자’ 하게 된다. 그렇게 실패는 두려움이 아닌 다음을 위한 연습장이 된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스노보드 최가온 선수가 그랬다. 모두의 기대를 안고 선 1차 시도에서 크게 넘어졌고 자신조차 ‘이번 올림픽은 끝났다’고 생각했단다. 모두가 치명적 부상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이, 그녀의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끝났다’고 선언한 머리를 두 다리가 일으켜 세웠다. 내게는‘끝까지 해보자’ 며 아픈 몸을 이끌고 3차 시도까지 마친 그 과정이 금메달보다 빛났다.
사람들도 ‘성공을 위해 실패는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안다. 문제는 뒷걸음치는 몸이며, 그런 몸과 미리 포기하는 마음으론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성공을 향한 욕망에 비해 그에 반하는 몸…. 욕망이 커가는 만큼 몸 또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하려면 실패만큼 좋은 체력장도 없다.
애정하는 요리사 최강록에게 ‘조림을 잘하는 비결’을 묻자 다양한 시도로 나름의 비율을 찾아 나갔다고 한다, ‘한 백 번 해 보면 못하겠느냐’고…. 백 번을 목표로 삼으란 말이 아니다, 하다 보니 백 번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실제로 백 번을 시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백 번의 시도에도 결과가 맘에 안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일지라도 완주하는 과정에서 내 손은, 다리는 의지가 생긴다. 완주가 습관이 되면 머리가 포기하고 싶을 때, 몸이 머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원문)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60311580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