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엔 ‘월요병’이란 말이 있다. 특히 학생, 직장인처럼 조직의 톱니바퀴에 맞춰 제 몫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을 의미하는 월요일은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와 유사한 개념은 해외에서도 존재하는데 ‘Monday Blues’, ‘Monday Syndrome’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기는 살인 같은 경쟁이 일상화된 ‘빨리빨리’ 대한민국이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학원 지옥에 시달리는 청소년기를 지나 잔업과 야근도 업무의 연장인 회사원의 삶이 평범한 곳이다. 따라서 ‘제 몫’을 해내지 못했을 때의 심리적 압박과 상실감, 우울감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죽하면, 직장 생활과 관계없는, 출퇴근이 없는 나 같은 예술가까지 월요병을 앓았을까.. 나는 이 나라의 부지런함과 ‘잘 해내겠다’는 성실함에 중독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성실한 나라의 근면함은 가난한 예술가에게도 치명적이었다.
2015년 나는 심한 무기력증, 번아웃에 시달렸다. 작업을 쉬지 않았음에도 불러주던 전시장이 없던 30대를 지나 40대 초반, 늦었지만 작가로서 미술계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보여주지 못하고 분리 수거된 작품들도 한 가득... 1~2년 간격으로 작업실을 이사 다녀야 했고, 설치 미술인 까닭에 미술시장에서 외면받는 건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상을 받았고 나름 그동안의 설움과 노력이 인정받는 듯했다. 그렇게 지쳐있던 내게 한 지인이 묻는다.
“다음 전시는 언제세요?”
“...다음 전시, 해야..겠죠?”
집으로 돌아와, 계획에도 없던 공모전을 뒤지고 지원금 서류를 쓴다. 전시를 하고 있음에도 불안했고 한국에 있으면 ‘다음에 뭘 하지?’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잠시라도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도망쳤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은 한국인들에게 피하고 싶은 날이다. ‘우리 모두 활기찬 한 주의 시작을 힘차게 출발해요!’ 란 아침 라디오 DJ의 업된 멘트와 심장박동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듯한 노래를 듣는 버스 안 사람들의 얼굴엔 피곤이 가득하다.
종이 신문을 구독했던 몇 해 전 월요일 아침, 내 앞엔 ‘이번 주 내가 도달해야 할 과업’과 같은 그 주의 경제, 사회, 정치 전망과 주말 사건, 사고 기사가 빼곡한 신문이 배달됐다. 지난주 아니 몇 해 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계속해서 쉬지 말고 일하라’는 명령...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나 사회면에 실릴 것 같은 불안함... 어쩐지 다음 주도 아니, 그 다음 주도 계속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이건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시지프스 신화의 굴러떨어진 돌을 마주하는 듯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다음’... 마치 이제 막 경주를 골인한 곳이 또 다른 출발선이다. 죽어야 끝날 것 같은, 그래야 허락될 것 같은 쉼은 이 생(生)에선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그 저주(?)들을 삭제하기로 결심했다. 그것들을 지우면 ‘‘다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럼 좀, 느리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지겹고도 고통스러운 말들을 지우니 아름다운 소리가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