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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_2019

 

김윤옥 (금호미술관 학예실장)

 

 

작가 박혜수는 우리 사회 기저에 내포된 집단이 지닌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삶과 일상에서 상실하게 된 기억과 가치들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가는 이러한 기억과 가치들을 시각화하기 위해서 타인 혹은 주변 환경을 면밀히 관찰하고 끊임없이 기록하고 때로는 설문 조사와 온라인상의 모집 공고를 통한 대중의 물품 수집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의 단서들을 채집한다. 그리고 이들을 드로잉에서부터 영상과 설치, 아카이브, 출판, 퍼포먼스에 이르는 다양한 결과물로 제시한다.

 

작가는 2005년 영화 <원더플 라이프>에서 영감을 얻은 후, 개인들의 잃어버린 기억을 모으는 <What’s Missing(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프로젝트 이후, 작업의 과정에 본격적인 설문 프로젝트를 가져왔다. 또한 관람객에게 조향사가 개별의 향기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 <당신의 향기를 물어 보세요>(2008),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대화를 채집한 후 이를 다양한 전문가들의 답변과 다양한 분석과 조언을 가미한 <Project Dialogue>(2008-)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그 기저의 무의식과 가치를 채집해왔다. 또한 이러한 수집의 결과물들을 기본적으로 출판의 형식을 통해서 선보이기도 하며, <Project Dialogue(대화) Vol.1-꿈의 먼지>(2011)에서는 작품 설치와 함께 점술가와 정신과 의사가 참여하여 새로운 형식의 설치 작업으로, <꿈의 표류>에서는 무용가가 참여하는 실험극 형태로 선보였다. 작가는 연극, 문학, 무용, 정신의학 등 타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고백을 재구성한다.

 

특히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버려진 꿈’이나 ‘요구된 보통’을 주제를 다루며, 과도한 사회 경쟁의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질서 속에서 가족이나 사회 공동체가 요청하거나 강요하는 관념과 규범에 맞추기 위해 상실한 개인들의 꿈과 가치를 전시의 또 다른 생산자이자 관객인 우리와 함께 끄집어내왔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자각을 유도하고, 다분히 편집적이고 선별적인 우리의 시각과 사고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하며, 때로는 이러한 사회의 시스템과 집단이 요구하는 명제들로 부터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올해의 작가상 2019>전시에서 박혜수는 <Project Dialogue(대화) Vol.4>를 통해 우리(WE)’라는 집단과 그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지금까지의 프로젝트들에서는 개인이 집단이 되고자 포기했던 가치 혹은 집단이 개인에게 강요했던 ‘보통’이나 ‘정상’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과여 개인에게 유효한 우리(집단)란 무엇인지’ 와 ‘특히 혈연, 학연, 지연 등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의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진단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우리’에 대한 다양한 대중의 생각을 묻는 설문 과정을 시작으로, 이 설문과 통계 분석 결과들을 전시장에서 설치 작업과 아카이브 등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전시 기간 중에 정신의학자, 사회학자, 문화인류학자, 경제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서 ‘우리가 모르는 우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관객과 함께 공유하게 된다.

 

이번 <Project Dialogue(대화) Vol.4>가 더욱 기대되는 지점은 이전의 작업들과 달리 프로젝트 결과의 방향성과 다음 프로젝트와의 연결점을 구체적으로 암시하는 데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향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예정인 ‘Perfect Family(퍼펙트 패밀리)’ 작업을 선보이며, 급증하고 있는 1인 가구의 개인을 위한 ‘가족 대여’ 사업에 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작가는 ‘Perfect Family(퍼펙트 패밀리)‘를 통해 새로운 ‘우리’에 대한 대안을 본격적으로 제시하며, 관객은 작가가 제시하는 가까운 미래의 건강한 공동체 ‘우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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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퍼펙트 페밀리_2019

 

이렇게 작가는 관객에게 개인과 집단, 삶과 꿈, 무형과 유형,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수많은 우리 삶의 유의미한 기억과 가치를 그의 작업으로 다시 마주하게 한다. 박혜수의 작품 속 개인과 집단이 지닌 무형의 언어들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과정 역시 관객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개입시키는 한편 작가 자신이 관객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마치 끝도 시작도 없고, 관객과 객석의 경계가 없는 우리 모두가 광대가 되는 연극처럼. 작가 박혜수는 지난 20여 년 동안 현대 미술이 우리에게 제시해야할 가장 기본적이고도 어려운 정의와 기능을 표피적이거나 가식적인 제스처가 아닌 작가로서의 일상과 작업으로 지극히 성실하게 수행해왔다.

 

 

201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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