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수의 《대화 프로젝트 vol. 4 – 우리가 모르는 우리》 “대립을 논쟁으로, 적대자를 상대자로 전환하는 심리 극장"

 

조주현(일민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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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작업은 ‘말 걸기’에서 시작된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에게 “(당신은) 보통이세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옆 사람과 속내를 나눈다. 그뿐인가. “당신이 버린 꿈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작가의 질문에 관객들은 오랜 세월 간직해 온 비밀스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타자기에 써 내려간다. 자연스레 작가가 만들어 놓은 대화의 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설문조사에 응하고, 수필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주변의 모르는 이들과 토론을 하고, 지나간 관객들의 생각을 뒤적여 그 위에 덧붙인다. 박혜수가 지난 10년 간 진행해 온 ‘대화’ 프로젝트는 이렇게 관객들이 스스로 말하고 느끼고 움직여서 만들어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수집된 관측 데이터들은 작가의 해석과 예술적 가공을 거쳐 한국사회 기저에 내포된 집단 기억, 무의식 등을 가시화했다. 전시 공간에 재구성된 아카이브 설치나 시, 희곡, 퍼포먼스, 영상 등 예술적 장치로 변환된 데이터 자료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거주하는 관객들의 끊임없는 연쇄적 개입을 이끄는 일종의 ‘대화 기계’가 되었다.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관객들을 논쟁적 플랫폼에 개입시키는 박혜수의 작업이 정신분석가 또는 정치인들의 활동과 다른 예술적 실천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건들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박혜수의 ‘대화’ 프로젝트를 비판적 미술로서 작동하게 만드는 몇 가지 기제들을 분석함으로, 어떻게 그의 작업에서 관객들이 정치적 주체가 되어 기존의 사회적 경계들을 변화시켜나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 기제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된다. 

①    허구적 가설을 세워 관계적 프로그램 작동시키기,
②    ‘불화(dissensus)’를 매개로 논쟁적 공간 창조하기,
③    가상의 비즈니스 모델 제안하기. 말걸기로 시작하는박혜수의 예술적 실천은 관객들에게 끊임없는 질문들을야기하며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욕망을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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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구적 가설을 세워 관계적 프로그램 작동시키기

 

박혜수가 이번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진행한 《대화 프로젝트 vol. 4 – 우리가 모르는 우리》는 심리극의 형태를 띤 연극 무대이자 사회과학자 또는 정신분석가의 실험실이며, 불화와 논쟁이 야기되는 사회체(social entity)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삶의 가치들, 자신의 일상에서 뜻하지 않게 상실해 온 ‘다름’의 가치를 가시화해 온 지난 프로젝트들의 연장 선 상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Us)’로 표상되는 집단의 이면, 즉 공동체의 감춰진 속성과 부조리, 부작용을 드러내기 위해 창안된 논쟁적 공간을 다룬다. 작가는 주관적 개념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중산층’*1 계급으로 인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사전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우리’라는 집단의 범위, 조건, 특성 등을 리서치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우리 아님(Not Us)’으로 표상되는 타자들과의 갈등, 불화, 정치를 실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무대를 제시한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2019)는 설문조사, 분석, 실험, 토론극장,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설치, 가상의 기업체 등으로 구성된 플랫폼이다. 작가는 관객들을 적극적 주체로 개입시키기 위한 방법론으로 여러 수준의 단계를 거치며 이 프로젝트를 전개시켜나간다. 1) 기초 설문조사와 분석결과에 대한 아카이브 시각화, 2)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작가가 도출한 문제제기를 예술적 형태로 구성해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 3)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수집한 오브제의 진열장 구성, 4) 현실에 대한 대안적 기제로서 가상의 비즈니스모델 제시, 5) 이 모든 내러티브의 중심에서 논쟁의장이자 철저히 기획된 심리극이 상연되는 중앙 무대가 그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다양한 사회과학적 모델들을차용해 일종의 상호작용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관계적 프로그램’*2을 창안하였고, 그의 예술작품은 하나의 ‘기능적인 모델’로서 사회적 장 안에서 관객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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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가 설계한 관계적 프로그램이 작동되는 방식을살펴보자. 우선 작가는 공무원, 회사원, 전업주부 등 중산층 표본 집단 507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사전 설문을 진행 한 후, 정신과 전문의와 협업하여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집단의 특성을 분석했다. 작가가 이 데이터를 통해 주목한지 점은 대한민국 중산층들에게 가장 높은 친밀도를 지닌 ‘우리’가 ‘가족’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비율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1인 가족 등 전통적 가정의 해체 양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극단적 이분화이다. 가족은 ‘우리 친밀도’ 부분에서 국가, 민족, 회사 등의 다른 항목들을 큰 차이로 앞질렀다. 설문 데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친 이후 오늘날 한국의 중산층들은 더 이상 국가나 사회, 직장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망이 없다고 여기며, 젊은이들은 그릇된 꿈을 꾸지도 허황된 도전을 하지도 않는다고. 가족만이 불확실한 미래에도 끝까지 내 곁에 남아 따뜻한 보금자리를 함께 해줄 거라고.


전시장 입구에 나열된 설문조사 결과지와 현장에서 설문에 참여하기 위해 북적이는 관객들이 생경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으나, 작가는 애초에 이 설문조사 과정에서 도출된 객관적 사회현상을 새삼스레 되짚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지점에서 정신과 전문의 반유화와 협업한 작가 박혜수의 설문 조사가 사회과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의 활동과 다른 예술적 실천으로 유의미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작가가 유의수준 0.05% 내외로 관측된 결과를 토대로 현실에서 있음직한 사회과학적 상상으로서 허구적 가설을 설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논쟁적 상황 속에서 관객들을 사유의 공간으로 이끈다는 점에 있다. 설문 ‘우리는 누구인가’의 관측 결과에 대한 작가의 가설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사회에 퍼진 가족환상주의는 과거 강력한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압축 성장을 경험한 대한민국이 현재 맞닥뜨린 불안한 미래를 상쇄시킬 작전으로 벌이는 심리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3 이에 따라 박혜수가 설계한 관계적 프로그램은 가족 공동체 둘러싼 이데올로기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갈등, 부조리, 부작용을 들춰내는 프로토콜에 의해 작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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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상 <후손들에게>(2019)는 바로 그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이면을 추적한 것이다. 영상은 ‘가족의 죽음’을 심도 있게 다루며, 핏줄이라는 상징적 매개체를 중심으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집단인 가족 역시 철저한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 놓인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4명의 유품 정리사와 4명의 장례 지도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과 관련된 장소(집, 장례식, 영안실 및 화장터)들을 교차로 보여주는 이 영상은 고독사로 사망한 노인들의 사연을 추적하고, 이들이 죽음과 함께 처하게 되는 국가나 사회의 제도적 차별 등을 드러내며,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이 사회에서 야기하는 부조리와 폐해를 조명한다. 사람들이 가족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무엇일까? 작가는 ‘화목한 가정’이라는 환상이 학습에 의한 관습적 선택은아닌지,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집단 이전에 개인의권한에 집중한 제도나 시스템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아닌지 반문한다.


영상 중간 중간에 삽입된 낭독은 독일의 극작가이자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후손들에게>(1934)라는 시이다. 히틀러 나치 정권의 불의와 부정의에 대항하며 살아야 했던 그가 덴마크 망명시절 쓴 이 시는 한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쓸쓸히 홀로 죽은 이들의 마지막 유언으로 대변된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촬영 중 방문했던 한 고독사한 국가유공자의 집에서 수거한 실제 유품들로 전시장 한켠에 진열장을 마련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뒤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이 노인의 집안에서 발견한 훈장과 상패 등 군인시절 추억들과 홀로 남겨진 노년에 자신의 심정을 기록한 일기장과 메모들은 자식들의 유품 수령 거부로 소각되지 못하여 작가의 손에 넘겨졌다. 가족들과 단절된 채 외로이 세상을 떠난 국가유공자에게 국가란, 가족이란, 공동체란 무엇일지, 질문들이 관객들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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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iddle Ground>(2019)_Back side

 

2.  ‘불화(dissensus)’를 매개로 논쟁적 공간 창조하기

박혜수의 《우리가 모르는 우리》에는 <No Middle Ground>(2019)라는 제목의 특별히 고안된 무대 형식의 구조물이 중앙에 위치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구조물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상징화한 이 대형 구조물은 작가가 우리나라 초기 교회인 김제의 '금산교회'에서 모티프를 따 온 것이다. 구한말 유교적 전통에 따라 남녀 유별하여 좌석을 배치하기 위해 기역자(ㄱ) 형으로 지어진 이 교회 건물의 단면은 110여 년이 지나 성평등 이슈가 극혐 문화로 번진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극단주의와 혐오문화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대안 없는 시스템으로 막강해진 글로벌 자본주의 체계가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획일화시키며 이에 순응토록 강요해 왔다. 이러한 일원화된 체계와 사고는 세계를 극단주의로 몰고 가, 대화의 단절, 혐오, 민족주의적 사고로 인한 정치적 후퇴 등 더욱 더 극심하게 세계를 양분화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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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철학자인 샹탈 무페는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을 ‘탈정치’(post-politics)의 시대로 진단하며,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만연하고 있는 ‘일치적 사고’로부터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경제적 불평등, 테러리즘, 문화식민주의 등-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논쟁적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비판적 미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 바 있다. 박혜수가 만든 무대는 바로 그러한 논쟁적 공간이다. 관객들은 ‘US’와 ‘NOT US’로 나눠진 이분법의 공간 <No Middle Ground> 안에서 갈등을 느끼고 그 경계를 재편하는 능동적 주체가 된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토론극장 <우리_들>(2019)은 설문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의 해석 과정에서 작가가 도출한 5가지 이슈를 주제로 심리, 사회, 경제,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설계한 렉처 퍼포먼스이자 일종의 심리극*4이다. 이 토론극장은 일방향적인 소통으로서의 강연이나 세미나와 달리, 연극성이 가미된 방식으로 인해 관객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참여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갈등 상황에 놓이거나 논쟁을 일으키는 상황을 유발한다. 이 토론의 참여자들은 한국사회의 공동체가 지닌 특성들, 집단 간의 경계짓기, 집단 내 개인의 소외화 등 개인과 집단의 관계 속에서 ‘불화’ 그 자체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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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극장:우리_들_1막 실험<당신에겐 꽃을 드릴께요> 中

 

‘불만자들’이라는 제목으로 10월 31일에 진행된 토론극장은 정신분석 전문의 성유미가 설계한 “편 가르기”에 대한 심리 실험이었다. 이 토론극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위를 가진 토론 설계자가 참가자들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고 편을 가른다. 한 편에겐 꽃을, 다른 한편에겐 강아지풀을 주어 두 편이 상반된 보상을 받게 나눈 뒤, 각 편이 서로를 보기 힘든 자리로 이동시킨다. 두 편으로 나뉘어 자리한 이들 그룹(Us/ Not Us)은 각자 모여 자신들이 왜 이 그룹에 선택되었는지 설계자의 기준을 추측하며 토론한다. 그때 40명의 참가자에 대한 편 가르기를 마친 설계자가 다시 등장해 ‘Us 그룹’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며, ‘Not Us 그룹’에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설계자는 호불호의 기준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 채, 이번 실험에서 끝까지 견딘 ‘Us 그룹’ 사람에게만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후 참가자들에게는 같은 집단 동료들의 지목에 의해, 또는 자신의 의지로 두 그룹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주어지는데, 이 과정을 거치며 참가자들은 자연스런 인간 본성에 의해 일반적으로 공동체 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경쟁, 보상, 따돌림, 갈등, 불만과 같은 심리상태를 경험하게 되고, 이를 표면화하는 것이 이 실험의 계획이었다. 

 

실제 정신분석 전문의인 실험 설계자는 관객들이 권위자의 호불호 집단 구분에 따라 꽃과 강아지풀이란 상반된 대가를 받게 되는 점, 내가 원하는 자리를 갖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 원하는 누군가를 내편으로 데려오는 대신 같은 집단의 누군가를 다른 편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권위자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점에서 불만을 갖게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서 다뤄지는 방법론으로 정신분석 전문의에 의해 진행된 이 실험은 예술의 영역에서 전혀 예측 불가능한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참여자들은 이 토론극장에서 자신들이 예술 프로젝트의 참여자로 실험 상황에 놓여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 집단과 달리참가자들 사이에 어떤 친밀도나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에게 자리 이동은 현실에서의 밥그릇 싸움과 같은 생존 문제가 전혀 아니었으며, 참여자들은 오히려 보다 강한 자극을기다리며 시종일관 호기심으로 임하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수는 오히려 설계자의 의도를 벗어나 한국사회의 젊은 층들에게서 나타난 흥미로운지 점들을 끄집어냈는데, 그것은 비주류 공동체 또는대안적 공동체에서 보이는 특성을 드러낸 것이다.

 

권위자가 자신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동안 참여자들은 그에 순응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오히려 권위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그 반대급부에 해당하는 Not Us의 위치에서 자기들끼리의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고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비주류 집단 내에서 자신들을 대표하는 누군가(이 실험의 경우 작가 박혜수)에게 무한한 권위를 부여하며, 스스로 소속감과 특권 의식을 창출해냈다. 이 실험이 예술적 실험으로서 갖는 의미는 무페가 제시한 바와 같이, 사람들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워주고 질문을 생산하는 비판적 예술로서 기능했다는 점에 있다. 그에 따르면, “비판적 미술은 불화(dissensus)를 촉진하는 미술이며, 지배적 합의가 모호하게 하고 지우려 하는 것을 가시적(visible)이게 하는 미술이다. 이는 기존의 헤게모니의 프레임 안에서 침묵 당한 모든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미술실천에 의해 구성된다.” 


한편, 무페는 오늘날과 같은 일치의 시대에 대한 대안으로 ‘논쟁’(agonism)의 개념을 제시하며, 논쟁이야말로 ‘우리’와 ‘그들’ 사이의 관계에서 반대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판적 미술은 단순히 어떤 사태에 대한 '비난의 실천'이 아닌, 논쟁적 미술의 형식이 되어야 하며, 불화를 통해 억압된 것들을 해방시키는 데 방점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랑시에르가 비판적 미술의 요건으로 감성의 분할에 관여하는 것, 즉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을 주장한 것과도 상통한다. 편가르기 실험에서 드러난 이와 같은 비예측적 결과는 공동체에서 각자의 자리를 규정하는 경계로서의 감성의 분할을 넘어서는 것이다. 박혜수가 토론 극장 플랫폼을 통해 기존의 주어진 경계 안에서 참여자들이 갈등을 겪고, 혼동이 야기되는 공간을 창안해 낸 것은 근본적으로 합의를 깨뜨리는 불화의 공간, 정치의 공간을 창조한다. 


결과적으로 박혜수의 첫 번째 토론극장 위에 오른 불만자들은 일치의 영역 안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주체로서, 합의된 금지선을 넘어 창조적 선을 만드는 유쾌한 행위자들로 역할 했다. 작가의 시도는 기존의 시스템과 지배 담론을 직접 바꾸려 하기보다, 관객 스스로 느끼고 생각해서 정치적인 주체가 되도록 한 것이다. 이렇듯 박혜수는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통해 참여자들의 감각 및 지각방식을 변화시킨다. 다시 말해, 그가 만든 관계적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이 기존의 감성계, 감성의 분할 체계에서 불편함 또는 불화를 느끼면서 이전에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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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상의 비즈니스 모델 제시하기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신뢰와 정직
정성과 책임감으로 
당신의 중요한 날에
가족의 힘으로.

-박혜수 <(주) 퍼펙트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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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박혜수의 전시는 작가 자신이 세운 가설과 해석이 혼재된 실험실 공간 내에서 관객들이 비판적 예술의 주체적 행위자로 역할 하는 동시에, 가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관계적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 <㈜ 퍼팩트 패밀리>는 국내에 이미 존재하는 역할대행업체들과 일본에서 성행 중인 ‘가족 대여’ 사업들의 사업 내용을 조사 한 뒤, 실제 서비스에 기반하여 만들어 낸 가상의 휴먼 렌탈 기업으로, 사업을 소개하는 카탈로그와 홈페이지, 광고물 등으로 구성된 작업이다. 프랑스나 영국 왕실에서 주로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색상인 로얄 블루를 모티프로 제작된 카탈로그의 안쪽 커버에는 유럽 명문가의 문장을 연상시키는 로고와 더불어 “휴먼 렌탈 비즈니스의 선두주자/ 당신이 꿈꾸는 가장 행복한 가족/ 퍼펙트 패밀리”와 같은 레토릭이 새겨져 있다.

 

불안한 나의 미래와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유명 보험회사의 상품 소개서처럼, 퍼펙트 패밀리의 서비스는 각종 상조회사, 실버산업, 배우 협회, 결혼 정보 업체, 멘탈 케어에 이르기까지 튼튼한 자본주의 네트워크로 파트너 기업들이 제휴되어, 자연의 섭리로 여겼던 인간의 생로병사와 그 어떤 인생의 역경도 끄떡없이 지켜줄 것 같은 믿음직한 가족으로 다가온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는 결혼식, 장례식 역할 대행을 넘어 효도 문자 서비스, 선생님 면담 서비스, 사과 대행, 이별 통보 대행, 퇴직 대행 등 전통적인 인습이자 윤리로서 개인이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엄마, 아빠, 아들, 딸로 구성된 중산층 4인 가족의 그림 같은 모습과 함께 광고판에 새긴 “YOUR FAMILY IS HERE”라는 문구는 가족의 붕괴 이후 한국 사회에 등장할 대안 가족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전시장의 관객들은 작가가 만든 이 가상의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신청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는 이들과 1:1로 대화를 나누며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 수집된 데이터는 또 다시 분석과정을 거쳐 매달 새로운 집계 자료를 전시장 출구 쪽에 공개하고 있다. 2019년 10월 한 달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관객들이 가장 선호했던 역할대행 서비스는 각종 계약이나 은행 업무 등에 동행하는 것이었으며, 배우자 대행이나, 시위(항의) 대행, 출근 대행 등은 가장 적은 비율로 나타났다. 그 밖에 퍼펙트 패밀리에 요청하고 싶은 서비스에 대해 관객들은 ‘꼰대 대응 서비스’, ‘과제나 졸업전시 대행’, ‘반려견, 반려묘, 반려 식물 등의 관리’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지금 한국사회의 젊은 세대들이 지닌 ‘가족’에 대한 의식이나 세태를 잘 드러낸다. 이들에게 가족이라는 형태 자체는 큰 의미가 없으며, 다만 함께할 수 있는 존재자를 통해 안정감과 소속감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우리’는 내 삶에 동행할 수 있는 누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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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서 박혜수 작가의 섹션은 전시실을 돌아나오며 마주하는 하나의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우리가 저들과 같이 살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저들”이 누구인지 되묻고 싶다. 이 질문은 관객 개개인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투영해 그 곳의 동행자와 대화를 이어가며 전시장을나서 일상의 공간으로까지 논쟁의 장이 지속되고 퍼지도록 만든다. 무페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는 대립(antagonism)을 논쟁(agonism)으로,적대자(enemies)를 상대자(adversaries)로 전환할수 있는 힘이다. 박혜수가 제시한 논쟁의 장은 나와 다른 낯선 타인에 대해 비난하는 방식이 아닌, 의식의 다른 형식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되도록 만든다. 미술에서 정치적인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주제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하는 창조를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감성으로 우리가 처한 세계의 드러나지 않은 구조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박혜수가 이번 《대화 프로젝트 vol. 4 – 우리가 모르는 우리》에서 구축한 다양한 관계적 프로그램은 이러한 감성의 혁명 또는 미적 혁명으로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새롭게 창안하고 완성하는 비판적 예술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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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혜수는 사람들이 중산층의 계급 기준을 경제적, 객관적 지표로 인지하기보다, 주관적 계층의식이 실제 중산층을 이룬다는 사회심리학자들의 일반적인 해석에 따라 중산층의 표본을 설정했다. -Artist's Statement, 2019.
2 관계적 프로그램은 부리오가 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한 네트워크, ‘상호작용적 기술’에 대한 “비판적 반응”으로 발전한 예술 형식을 지칭하며 사용한 용어로, 이러한 예술 작품들은 “걷잡을 수 없는 네트워크의 흐름 속에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내밀한, 사적 인간관계를 위한 열린 틈”으로서의 공간을 구축한다. -Nicolas Bourriaud, Relational Aesthetics, trans. Simon Pleasance & Fonza Wood, (Dijon: Les Presses du reel, 2002), p. 70.
3 박혜수, 설문분석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 2019.
4 <토론극장: ‘우리_들’>(2019)은 전시기간 매달 1회씩 진행되며, 정신분석 전문의 성유미(편가르기의 심리학-불만자들), 사회학자 노명우(패거리 멤버십), 경제학자 최정규(밖으로 향하는 신뢰), 문화인류학자 김현경("I need somebody not just anybody"), 정신분석 전문의 반유화(감정위탁소)가 참여한다. 큐레이터 이경미와 협업으로 기획하였다.
5 Chantal Mouffe, “Art and Democracy: Art as an Agnostic Intervention in Public Space,” in Open, No. 14, 2008, p. 12. 
6 Chantal Mouffe, “The Art of Critical Art,” in Rekto: Verso, No. 52, May-June, 2012, p. 1.
7 Jacques Rancière, Aesthetics and Its Discontents, trans. Steven corcoran, Malden, MA: Polity Press, 2009, p. 25
8 Chantal Mouffe, “The Art of Critical Art,” p.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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