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 상반기부터 경기일보 오피니언 <천자춘추>에 게재한 글입니다.
원문)https://www.kyeonggi.com/article/202601215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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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본 것 없음. 가 본 곳 없음. 특별한 일 없음.
“작가님은 어디서 영감을 받으세요?”
“주변의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요.”
“너무 평범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요?”
“음… 어디서 본 듯하고, 누구에게 들은 듯하고, 우연히 스친 듯한… 주변에 널린 것들요.”
“그런 게 작품이 되나요?”
“그래서 평범한 예술가로 사나 봐요.”
비예술계 사람들을 만나면, 예술가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 게 있다. 뭔가에 미쳐있는 것 같은 ‘비범함’, 사람들과 섞이지 않는 ‘고독함’ 그리고 고통과 불행마저도 승화시키는 ‘창의성’ 같은... 하긴 역사에 기록된 예술가들은 고독한 천재 미치광이가 많았으니, 그런 환경에서 예술이 꽃피운다는 환상은 예술가들에게도 있다. 나 또한 대학 시절 끼 많은 동료들에게 기가 죽어 작가가 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의 가치를 깨닫기 전엔 말이다. 어쨌든 나는 ‘특별함’과 ‘새로움’, ‘독창성’을 중요시하는 예술계에서 보편성을 무기로 운 좋게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평범하고 당연한 것’을 다룬다고 해서 표현 방식 또한 평범한 건 아니다. 비범한 예술계에서 보편적인 것을 얘기하는 만큼, 더 치밀하게 연구하고 관객의 공감대를 얻어야 하는 숙제를 늘 안고 산다. 다시 말해, 나는 바다 밑 깊은 해저가 아니라, 파도 바로 아래 사람들이 놓쳐버린 것들을 건드린다. 등잔 밑이 어두운 이치랄까. 매일 먹는 백반을 친숙하지만 한 끗을 다르게 만들려면 나름의 고민이 깊긴 하다.
나는 그 한 끗을 예술계가 아닌 곳에서 자주 찾는다. 경제·정치·사회·과학 등 비예술적 분야의 방식을 자주 작품에 끌어오니 ‘사회적이란’ 평을 듣게 됐다.(그때마다 “예술도 사회니까요.”라 응답한다) 시각예술에서 재료·기법의 한계가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음악·무용·문학과 같은 예술이 아닌 비예술 분야의 접목은 예술계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듯하다.
이런 시도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동료 한 명이 물었다.
“뭘 알고는 하는 거지?, 리스크가 커.”
“처음이니 당연히 실수하겠지. 근데 안 해 본 거 할 때, 욕도 덜 먹더라고.”
“그러니까 그냥 하던 거나 하지. 뭐 하러 욕을 사서 먹어, 어리석게.”
하지만 ‘해 본 일’에서만 돌파구를 찾으려 든다면 저들 말대로 하던 거나 하면서 살아야 한다. 먹던 것만 먹고, 가본 곳만 가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삶을 산다면 최소한‘사는 게 지겹다’고 말해선 안 된다. 평범한 이야기를 평범한 방식으론 풀어낼 수는 없으므로...(그건 너무 뻔하다) 무엇보다 나는 재밌게 살고 싶다.
애정하는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이런 대사가 있다.
“해 왔던 일을 하면서, 안 했던 일을 할 겁니다.”
만년 꼴찌 야구팀의 문제점을 파악한 신임 단장이 내린 처방이다. 하던 대로 열심히는 했는데 매번 제자리만 맴돌다 이젠 ‘좋아질 거란’ 기대마저 없어져 닥치는 대로 사는 중이라면, 지금이 ‘안 했던 일’을 해야 할 때다.
내게 묻는다면, 설치예술가로 언론사에 글 쓰는 일이 가장 최근에 한, ‘안 해 봤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