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난 통일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불안정하고 고달픈 예술가의 삶을 살자니 문제가 차고 넘치는 현실 앞에 답도 없는 문제들은 외면했던 것 같다.

지난 두 달 간 전시를 위해 조사한 북한 관련 정보와 통계자료, 탈북자 인터뷰, 강좌를 들으면서 누구에게도 통일의 필연성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의례히 입에 붙은 말로 ‘한 민족이니까.’, ‘국민의 염원’이라는 식의 교과서적인 대답을 하시지만 실제로 이들이 탈북자들에게 가장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자기 살길 바빠 통일 따위 생각할 여력이 없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한민족 국가가 아니며 이미 사회 모든 면에서 벌어질 대로 벌어진 남북한에서 공통점을 찾아 동질성(민족성)을 회복하기엔 남한 역시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다시 말해 기준이 사라진 셈이다.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 남한은 경제적, 정치적, 국제적 힘의 논리로 통일을 말하는 듯하고 북한은 미국에게서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둘 다 통일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이들의 장황한 외침에도 여전히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좋은 나라이고 남한은 좋은 나라인지’, ‘통일을 하면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지’ 기대가 아닌 의구심만 늘어난다.

 

 

그 사이 자본주의에서 큰 돈 벌기를 꿈꾸며 남한에 온 3만명의 탈북민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자본주의의 냉혹함과 잔인함을 혹독하게 경험하는 중이며 이중 20~30%는 돈을 벌기위해 스스로 난민이 되어 다시 외국으로 떠난다.

나는 통일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공허하고 낯설지만, 스스로를 외국인 노동자보다 낮은 계급으로 치부하며 북에서 왔다고 밝히지 못하고 차라리 조선족이라 말하며, 자신의 말투 때문에 탈북민임이 들통날까 아예 말을 줄이거나 침묵을 택하면서 우울함과 외로움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곳 또한 저들에게 그토록 꿈꾸던 나라가 아님은 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가난과 중국에서의 불안을 피해 아무 기대 없이 남한을 선택하는 탈북민들이 늘어나는 것도 더 이상 놀랍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를 대한민국 국민이기 보단 여전히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가난했던 1960년대 독일로 간 우리의 광부와 간호사들 또한 그렇지 않았겠는가.

 

 

탈북민 설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열심히’, ‘성실히’, ‘노력’, ‘극복’, ‘끈기’, ‘인내’란 말이 어느 때보다 불편하게 들린다.

‘과연 대한민국은 누구나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회인가.’

‘당신은 당신이 꿈꾸던 오래된 소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가.’

‘국가는 국민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보호해 줄 의지가 있는가.’

‘차별 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가.’

 

 

 

오직 공무원만이 희망이고 부동산만이 미래이며, 계층이 대물림 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안타깝지만 위와 같은 질문에 나는“예”라고 답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갖은 편견과 무시 속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근근이 견디며 오직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서 남한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겠다는 탈북민들의 결심에 짠하고 가슴 한 켠이 무겁다.

탈북한지 3개월 된 한 탈북민은 남한을 ‘하늘의 별세상’이라고 생각했다는데 그‘별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수천, 수만의 청춘들이 자신들의 오래된 꿈을 접는다.

다만 탈북민들이 앞으로 남한이란 별(別)세상에서 겪게 될 수많은 실패와 고통에서 혼자 아파하지 않기를, 침묵하지 않기를 바라며 모르는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우리 또한 당신을, 그 외로움을 미처 몰랐음에 미안함을 전한다.

 

2017. 11.1

PS: 이 글은 <경계 155> 전시에 참여하면서 제작한 작품 <하늘 별세상 Walls>을 제작하면서 쓴 작가 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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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서 받는 편견의 내용들을 나타내는 설치작업 <A Forest of Prejud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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