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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ous Pouch_2011_steel wire_25x80cm

양심보관소_수세미철사_25x80cm_2011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지금 생각 해도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믿기조차 싫은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선명하게 떠올라 얼굴을 붉힐 때가 종종 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어서 지금도 삶과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초등학교 5~6학년 때였던 것 같다. 소꿉 친구였던 B와 기억나지 않 는 사소한 이유로 몇 주간 말도 하지 않았던 일이 있다. 둘도 없던 친 구도 말하지 않고 몇 주가 지나다 보니 보기만 해도 불편한,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B는 자신의 친한 친구들을 모아서 나를 따돌렸고, 나는 복도에서 우 연히 주은 B의 벙어리 털장갑을 쓰레기 소각장에 갖다 버렸다. 아버지가 사다 주신 거라며 한참을 자랑하던 거여서 반 아이들 모두 그것이 B의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튼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한참을 장갑을 찾아 난리를 치던 B는 결국 나를 의심했다. 나랑 말조차 섞기 싫어하던 그녀가 갑자 기 4~5명의 친구들을 모아 게임을 하는 척 하며 주머니 검사를 하려 했 고, 난 당연히 발끈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선생님께 일러바쳤다. 증 거도 없이 사람 의심한다고.

결국 B는 선생님께 무지기로 혼이 났고 그 모습을 보던 나도 맘이 편치 않았다.

그 후 몇 주 지나서 B를 괴롭히던 C를 내가 혼내주면서(그녀를 위해서라기보단 난 원래 C가 싫었고, C를 골탕 먹일 날만 바라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시 친구가 되었다.

(여기서 좀 인성이 괜찮은 아이였다면 화해한 다음이라도 잘못을 고 백했겠지만, 난 그렇게 착한 아이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B도 C도 차츰 잊어졌지만, 지금도 벙어리장갑만 보면 내 주머니 속 빼돌린 친구의 장갑이 떠올라 식은땀이 나곤 한다.

그 때부터인지 벙어리장갑은 내 양심을 자극해서 이나마 내가 욕 안 먹고 살게끔 사람 만들어 준 것 같다. 

 

-에세이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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