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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번 대담은 artswill에서 선정한 패널 두 분이 작가 박혜수의 작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작가와 큐레이터가 계획된 대본에 따른 대담이 아니라 상호 전혀 모르는, 아주 돌발적인 상황에서 Introduce하는 성격으로 전개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즉 Preview 방식의 하나로서 한 관객이 처음 작품과 마주쳤을 때 일어나는 궁금증을 큐레이터(대담자)가 대리하여 묻고 작가가 입장을 밝히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artswill

패널 윤재갑(갤러리 아트사이드큐레이터) 이승미(제비올미술관 큐레이터)

 


Q. 조소를 전공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미술의 장르가 해체된 듯 하다. 회화같기도 설치 같기도 한데...


구분된 어느 한 장르 안에서 한정된 작업을 하진 않습니다. 작업의 경향은 사고에 맞게 선택될 뿐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관점입니다. 예술가는 무엇을 만들고 창조한다고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는, 아니 제게 있어 예술가는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대단한 어떤 위대한 것에 대한 발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하고 익숙한 사물들, 너무 도처에 널려있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을 온전히 다시금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것들은 그렇게 잊혀지고 무관심해 질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 아닙니다. 사람들, 관객들 또한 이러한 것들에 새로이 발견하는(미적체험) 계기사 되기를 희망하며 작업합니다. 이것이 제 작업에 있어서 강조하는 소통의 문제입니다. 제가 발견한 것이 관객의 발견으로 전이되길 원하는...
 


Q. 일반인의 관점에서 예술에 대한 선입견 중에 작품에 대한 형상성과 영속성이 지배적이란 경향이 있다. 즉 작품은 하나의 완전체로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예술작품은 그것이 완성될 때 작품안에 시간이 고정되어 작품자체가 하나의 영속성으로서의 시간성을 갖는다고 본다. 우선 작품의 소재(매체) 대해 말한다면 꽃가루와 나뭇잎 가루로 작업한다는 점은 이런 일반적 통념으로 다가갈 경우 매우 다른 경향으로 풀이해야 될 것 같다. 예컨데 가루라는 속성이 작은 물리적 변화에도 즉각적인 변화가-약한 바람이나, 벌들의 움직임에도 곧잘 흩어지는- 일어나는 매체가 아닌가?


저는 작품이 변하는 것을 굳이 막으려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지켜보노라면 그 스스로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즉 누군가가 만들고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과정을 겪으며 변화해 간다는 것을 발견했죠. 저는 그러한 서서히 변화되는 과정이 마침내 하나의 형상으로 드러나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에서 가정을 중요시하는 점도 "과정이 형태를 결정한다"라는 자연적 질서와 유사합니다. 처음엔 저도 형태를 가진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 가장 아릅답고 완전한 형상들은 이미 있어 왔고 그러한 존재들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업에 있어서 과정 끝에 나타나는 형상은 발견될 당시의 모습이 아닌 보통은 생각할 수 없는 형태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형상은 익숙한 것들에 대해 새로움을 주지 못한단,s 생각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99년부터 계속 연계되는 綠시리즈는 모두 사각의 형태를 띄는데 이는 자연물을 가지고 자연에선 볼 수 없는 사각형을 통해 보는 이의 머리속에서 전개 될 원래의 형상을 떠올리고자 한 의도입니다.
 


Q. 그렇다면 형상에 대한 확신을 버렸다는 말인가. 작업 태도와 방식이 형상이라는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어보이는데...


형상으로만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에 회의적일 뿐입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작업은 금새 잊혀지죠. 형상을 통해 저를 포함한 보는 이의 닫힌 눈이 열린다면 다시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작업은 단지 개인의 이야기만 전달하는 작업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연관, 세계관은 한 작가의 작업관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상호 닮아있다고 봅니다. 작가가 무엇을 창조한다라는 자세는 한편 인간의 교만이 아닐지. 마치 그것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착각 말이죠.
처음에 이러한 작업을 하게된 동기도 가을하늘을 보면서 그 색을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근데 만들 수 없었죠.. 그러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순간도 내가 함부로 사용하고 마치 내가 창조한다고 한 색들은 이미 있었다는 것을. 그때부터 창조란 말이 더 이상 제 작업에선 연관이 없어졌죠.

 


Q. 그렇다면 작업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채집에서부터 분쇄/분류 작업의 과정이 작가에게 너무 벅찬 노동은 아닌지..
  

결과만으로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저는 과정을 즐깁니다. 채집이 내 나름의 인식 태도로 접근한다는 것이 그렇고, 그 채집된 것-기존의 안료가 아닌 가장 흔히 보이는 나뭇잎이나 꽃-을 손질하면서 가장 정제된 과정 속에서 이미 나는 그 재료와 같은 존재임을 느낍니다. 

 


Q.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 미술과의 변별성에 대한 물음에 진지해졌으면 한다.
이를테면 작품은 형상성을 지녀야한다. 영속성/작품성-작품에 내재된 의미, 메타포 등의 복잡한 문제가 내포된 점이겠지만, 작가=창조하는 자 라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인데..지금 모든 편견없이 작가를 볼 때 지적하고픈 것은 어떻든 예술작가는 작업과정과 작품과의 예의없는 대결구도를 갖출 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예를들어 과정이 아무리 집요하더하도 작업과정이나 작품의 귀결 완성 방식이 자신과의 일체감을 갖추기 까지, 즉 하나의 결정체로서의 작업과정을 낳기까지 엄청난 대결의 태도를 견지하고, 작가가 이미 갖추고 있거나 선입견으로지니고 있는 불필요한 개념들을 제거해가는 것을 고려해야하지 않을지...
한편 작가의 작업이 과정을 중요시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프로세스 아트와의 차이점이라든지 꽃가루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대지예술,바디아트(표현의 매체-질료가근본적인 것에 의존하는 각종 예술유형), 그리고 그 과정이라는 것이 갗추는 시간성, 혹은 시간적 순환, 작품의 존재 양태로서의 유일성에 부여되는 시간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작가의 정연한 정리가 요구되지나 않은지?

작품이 변는 만큼 저도 변하겠죠. 이 시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말입니다. 지금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해도 언젠가는 해야하는 필요한 말들만 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미래란 시간은 짐작하기도 힘들고 또 그 안의 개인의 변화는 더더욱 예상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간에 제가 하는 작업엔 모습은 다를 지라도 동일한 내용이 담기지 않겠습니까?
 모든 예술은 정신적 환기를 위한 하나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불러 일으키는 정서의 환기나 교감적 정서의 환원, 순환을 예술의 중요한 덕목이라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소통이라는 명제의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작업이 개인만의 은밀한 즐거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익숙함 속에 가려진 새로움을 관객이 공유하는 것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Q. 이번 전시는? 


이번 전시 제목은 "표면에서 느끼는 깊이"입니다. 밖에서 인식 할 수 있는 현상들... 실재로 채집을 하면서 시간의 빠른 변화를 자연물의 색을 통해 느낍니다. 그드르이 변화가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서일 뿐 아니라 어떤 내부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표면에서느끼는 깊이"는 다시말해 외부(밖)에서 보여지는 과정(변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들을 느낌의 언어로 작업했습니다. '떠오르기','번지기','킩기'와 같은 것들이죠. 곁을 보지만 안을 느끼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작품 스스로가 무언가를 드러내 보여주기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를 환기시키고자 함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집니다.


기술, 정리 김홍일(arts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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