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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건 당신이다.

                                                                                       

이추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예술가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물들이 속삭이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속삭임이 말이 되게끔 끌어가는 사람이다.”1)

 

작가의 집에는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귀한 그림이 있었다. 가족들은 ‘칠칠(七七)이’로 알고 있던 이 그림의 작가가 조선 시대 기인 화가 최북(崔北)임을 근래에야 알게 됐고, 이 귀한 그림의 값어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가족들의 소망과 믿음을 저버리듯 이 작품은 가짜 그림이란 감정 결과를 받았고, “이 작은 그림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우리 가족을 상대로 사기 쳤다는 배신감에 분통이 터졌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발기발기 찢겨 진 후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할 죄 많은 작품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지난 수 십 년 동안 가족들에게 주었을 여러 가지 위안들 첫째, 사업을 하시던 아빠에게 경제적 위기가 닥치면 비싼 값에 팔아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고, 둘째, 유명한 화가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높은 품격에 심미적 안정감을 얻곤 했던 사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작가는 지난 40년간 느꼈던 가족들의 ‘기쁨’이 지닌 무형의 가치를 존중하고,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억울한 그림의 지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현대미술’의 마법을 덧씌워 새로운 작품으로 복원 시켰다.2) 이제 이 작품은 <40년의 기쁨>(2011)이란 당당한 제목으로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작가가 훗날 대가의 명성을 얻게 되면 이 작품에 대한 중요성이 커질 테고, 이때는 더욱 비싼 경제적 값어치로 가족들(혹은 후세대)에게 더 큰 기쁨을 안겨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작가가 작업을 지속 하는 한 향후 수십 년간의 생명연장의 꿈을 보장 받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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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What's Missing'(왼쪽) 40년의 기쁨(가운데) 위로가 필요한 건 당신이다(오른쪽) 

 

 

“나는 창조자란 이름보다 발견자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3)

 

박혜수의 작업은 크게 오브제 조각, 설치 작업과 설문 프로젝트로 나눌 수 있으며, 두 프로젝트는 거의 동시에 진행된다. 조각 설치 작업의 경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재료와 기법이 사용되며 변화무쌍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반면, 설문 프로젝트는 수많은 익명의 관객들이 제공하는 소스가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는 작업이다. 그러나 상반된 형식을 지닌 듯 보이는 그녀의 작업은 수집(蒐集)을 통해 얻어진 다량의 재료들을 분석 한 후 의미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작업화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4)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지니게 된 이 ‘오래된 취미’가 재능 없는 자신을 작가로서 버티게 해준 요소라고 언급하지만, 쓸모없는 존재와 하찮은 가치로 치부되는 수많은 몹쓸 것들 중에서 반짝이는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시각화 하는 능력 또한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양 드로잉>(2001-2003)은 ‘오래된 취미’의 극단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자연의 시간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시작한 이 무모한 도전을 위해 작가는 작업실 주변 등산로를 따라 20kg이 넘는 통나무를 끌고 다니며, 돋보기를 이용해 나이테를 불로 지져 태양의 이동경로를 기록하였다. 이 퍼포먼스의 이동 거리는 4km(걸어서 30분 거리), 총 소요 기간은 2년(01.2-12, 02.2-03.3)이었다. 필자는 이 작업이 개념적인 퍼포먼스의 결과물 이라는 의미를 넘어 평탄치 않은 예술가의 삶이라는 몸통에 문신처럼 새긴 작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실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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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드로잉 (2001-2003)

 

“내 작품으로 인해 개인이나 사회가 변할 수 있다면 예술가로서 그 생에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닐까. 우선 나는 그 출발을 개인(個人)으로 삼았다.” 5)

 

박혜수는 2005년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플 라이프>에서 영감을 얻은 후, 개인들의 잃어버린 기억을 모으는 <What's Missing(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프로젝트를 통해 본격적인 설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6) 이 프로젝트는 이후 다양한 방식의 설문 프로젝트로 확장되면서 장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당신의 향기를 물어 보세요>(2008)는 총 2,000여 명의 개별 관객들에게 개인의 향기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였고, 공공장소에서 사람들 간에 오가는 대화를 채집한 후 이를 분석하여 다양한 전문가들의 답변과 다양한 조언을 제시한 <Project Dialogue>(2008-)를 진행 중이다.7) 특히 《Project Dialogue vol.1-꿈의 먼지》(2011)전에서는 작품 설치와 함께 점술가와 정신과 의사의 참여시킨 새로운 형식의 설치 작업으로 관객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하였으며, 연이어 무용가가 참여하는 실험극 형태의 <꿈의 표류>를 발표했다.

 

수십에서 수 천 명의 관객들이 제공하는 사고(思考)의 조각들은 박혜수의 작품 토양을 기름지고 풍부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고, 농부와도 같이 끊임없는 노동으로 일궈낸 결과물은 고스란히 관객들과 공유되었다. 그녀는 일상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인생의 가치’와 ‘꿈’에 대한 깨달음을 공급했으며, 소통의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대화를 유도하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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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Dialogue vol.1-꿈의 먼지/ 꿈의 먼지(왼쪽)_꿈의 표류(가운데)_오래된 약국(오른쪽) 

 

지난 10여 년간 박혜수가 보여준 다양한 작품 활동은 예술가의 재능이라는 얄팍한 눈속임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한 양과 질의 결과물로 나타났다. 작가가 자주 언급하는 ‘타고난 재능’의 부족함은 끊임없이 몰아치는 육체와 정신의 바지런함과 끈기,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과 진정성을 통해 이미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가의 콤플렉스는 그 또한 창조적 작업에 일조 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박혜수의 작업은 나무와 같다. 큰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 아주 오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비와 바람, 폭풍과 눈보라를 버티며 조금씩 티 나지 않게 나이테를 늘리고 키가 큰다. 숲 속의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그 나무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시원하고 넓은 그늘을 펼칠 수 있음을, 높게 솟아 태양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지나간 수고와 괴로움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주)
1.박혜수, What's Missing, 에듀멘토르, 2010
2.가짜 명화가 그간 누려왔던 역사적 맥락을 풍부한 재료 삼아 작가의 진짜 이름을 새긴 붉은 색 낙관을 찍어, 마치 뒤샹의 변기나, 모나리자의 수염과도 같이 ‘작가의 선택과 의도’라는 전형적인 현대미술의 전복 미학을 차용하여 새로운 맥락의 현대미술 작품으로 치환시킨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3.박혜수, 위의 책, p.34
4.태양의 빛을 모아 돋보기로 태양 길을 기록하거나 계절별 식물을 모아서 시간의 흐름을 살펴보고, 사람들의 이름을 모아서 그 안의 시간의 속도를 비교해 보고,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서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사람들의 향을 모아서 나에겐 어떤 향이 나는지 실험하고, 사람들의 대화를 모아서 왜 사람들은 진지한 이야기를 싫어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이 버린 꿈을 조사하는 중이다. 박혜수, 위의 책, p.34
5.박혜수, 위의 책, p.37
6.이 프로젝트로 수집된 1,000여명의 설문의 결과는《잠겨있는 방》(2008. 11)과 《What's Missing》(2011)전을 통해 발표되었으며, 작가의 다양한 생각을 담은 단행본 What's Missing, 에듀멘토르, 2011)가 함께 출간되었다.
7.<Project Dialogue>는 공공장소에서 채집한 사람들의 대화를 분석하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되는 작업이다. 수집된 대화 50종과 이 대화에 대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답변들은《Into Drawing 10-Dialogue》(2009)전을 통해 발표되었다. 총 5개의 심화 프로젝트로 진행 중인 이 작품 중《Project Dialogue vol.5-예술가로 살아남기》(2011)와 《Project Dialogue vol.1-꿈의 먼지》(2011)가 발표되었으며, 현재 vol.2-보통의 정의, vol.3 -Money(가제), vol.4-사랑과 결혼(가제)이 준비 중이다.
8.탑골공원의 무료한 노인들에게 황인용 씨의 추천 음악을 틀어주고(비록, 공원에 설치되지는 못했지만), 인생이 꼬인 사람을 위해 점술가의 행운 부적을 만들고, 상담이 필요한 관객을 위해 전시장에 정신과 의사를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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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You Who Need Consolation 

 

“An artist is someone who realizes their surrounding whispers and enables their whispers to make sense.”
 
There was a precious painting inherited from her maternal grandfather in Heysoo Park’s house. Her family discovered this painting was painted by Choi Buk, a Korean painter of the late Joseon period, known as an eccentric artist. So her family became curious about the value of this painting. But an appraisal disappointingly revealed this painting to be a fake. This painting was one to be thrown away after being torn to pieces. The artist said, “We got infuriated with a sense of betrayal that this little painting had cheated my family over the course of several decades.” All the same, nothing changes in regard to this painting which solaced her family for the course of a few decades: this painting with high economic value was expected to give her father some economic aid if his business might be in crisis; and her family used to gain some aesthetic stability and comfort from this painting’s lofty dignity when viewing a beautiful scene represented by a noted painter.
 
Accordingly, Park has restored this painting as a new work to recover its position by lending the magic of contemporary art to this fake painting, respecting the invisible value of “joy” her family felt for the last 40 years. This painting has gained a completely new sense with its new title, Joy in 40 Years (2011). If Park gains a reputation as a master artist in the future, this work’s importance will grow and bring her family joy with its increased economic worth. Anyway, this work ensures her dream of extending her artistic life as long as she is continuously involved in artistic work.

“I prefer being called a discoverer to a creator.”

Park’ work is largely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object sculpture, installation, and survey projects. Two projects are carried out almost simultaneously. Her sculpture and installation work demonstrates ever-changing forms and uses a wide array of materials and techniques depending on her concerns and based on her personal experience. 
 

And yet, her survey project focuses primarily on input brought by anonymous viewers. Her works that seem to be in contrasting forms have something in common in that they discover substantial value after analyzing a multitude of materials. The artist mentions that this “ancient hobby” she has relished since her childhood is a factor that has enabled her to survive as an artist even though she has no talent
for art. Nevertheless, her ability to discover fascinating connotations in a wide array of things considered to have little value and to visualize them can be said to be a special talent others do not have. 

Sun Drawing (2001~2003) demonstrates an extreme level of a long-time hobby. The artist embarked on the reckless challenge of carrying a log weighing over 20 kg along trails in order to experience firsthand time in nature, documenting the sun’s movement by scorching the log’s growth rings with a magnifying glass. The distance traveled for this performance was four kilometers (a half-hour walk) and the time required for it was two years (February~December 2001, February 2002~March 2003). I consider this work a showcase of her will inscribed on the body of an artist who has lived an uneasy life, moving beyond the meaning as the result of a conceptual performance. 

 

   “If my work brings about some change in either individual or society, I can say that I have pulled my own mission in my life. An individual is the departure point of my work.” 

Inspired by After Life, a 1998 film directed by Hirokazu in 2005, Park began survey projects in earnest with What’s Missing, a project collecting each individual’s lost memories. Since this project she has conducted many survey projects in different ways on a long-term basis. Find Your Scent (2008) was a project offering each viewer an individual scent. Project Dialogue (2008~ ) is an ongoing project that suggests a variety of answers and advice from experts after collecting and analyzing conversations exchanged in public places. Project Dialogue vol. 1–Dream Dust (2011) is a new type of installation involving an astrologer and a psychiatrist, through which she made a foray into actively communicating with viewers. The artist consecutively made public A Drift in the Dream, an experimental theater-style work involving a dancer.

The pieces of thoughts provided by several hundred or thousands of viewers have become a foundation enriching her work. She shares the products of her persistent labor with her audience as if a peasant does. She awakes viewers to the value of life and dream forgotten by being buried under everyday life, brings those unable to communicate to conversations, and presents solutions to those who need consolation. 

Her artistic practices over the last 10 years have resulted in artworks in quantity and quality overpowering the shallow trickery of an artist’s talent. She seems to have already overcome her lack of talent she has often mentioned through both physical and spiritual industriousness and perseverance as well as her warmhearted eyes and veracity toward objects. Park’s work is like a tree. A long span of patience and endurance is required in order for a tree to grow and become a big tree. Deeply and widely rooted, the tree gradually increases its growth rings and stature while withstanding rain and snowstorms. The tree concealed by other trees from view realizes at some moment that it is able to provide spacious shade, get closer to the sun, and previous effort and suffering are by no means in vain. 


 

-Chuyeong Lee (Curator, M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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