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작가상2019를 준비하며 적었던 작가 노트 풀 버전입니다. 2019년 초반에 썼던 거라 전시장에 구현된 작품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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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준비 중인 프로젝트의 주제는 ‘우리’에 대한 것이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우리’라고 불리우는 것이 많이 불편하다. 아니, 때로는 불쾌하기 까지 했다. 나는 분명히 그것과는 생각이 다르다고, 당신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해진 답이 있으니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며 ‘우리의 입장’이라며 개개인의 차이를 뭉개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닌, 모두의 의견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였을 게다. 그만큼 ‘우리’는 다수이자 모두이며 곧 하나를 의미했다. 그 앞에서 어차피 바뀌는 게 없다고 체념해버린 개인들은 차마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다.

‘우리는 하나다.’ 라는 말처럼 ‘우리’는 단결과 화합을 강조하며 전체를 위한 개인들의 희생을 당연시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는 내가 아니다. ‘나를 당신들의 ‘우리’에 가두지 말라’는 것이 지금까지 나의 생각이다.

나는 이 주제를 가지고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당연하게 뭉개는 ‘우리’를 우리(Cage)로 받아들여 ‘한국은 우리(we)란 우리(cage)에 갇혀 있다.’ 고 말하고자 한다. 설사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이미 200여명에게서 사전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사람들의 ‘우리’에 국가나 조직은 고려되고 있지 않았다. 최종 설문 문구를 결정하기 위해 몇몇 지인들에게 진행해 봤을 때에도 ‘우리’는 곧 가족이고, 나라나 국민, 회사나 학교 등과 같은 공동체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부러 의미를 설명해도 특히 젊은 세대들은 ‘왜 나의 ‘우리’에 국가나 회사가 들어가야 하냐며 따져 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족은 달랐다. 이미 한국 사회의 가족은 떠안은 사회적 책임과 의무에 지쳐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가족 지향적 삶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우리’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가족에 대한 것이었으며 자연히 이번 작업은 가족이 그 중심에 있게 됐다.

 

 

나의 어머니는 ‘우리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난 그 말이 굉장히 거슬렸다. ‘그럼 다른 집은?’  나의 반문에 의례이 ‘몰라. 따지지마.’ 라며 어머니는 자리를 피하셨다. 물론 나는 어머니의 명령과 같은 말에 순종한 적이 별로 없다. ‘과연 사람들이 최후의 보루로 믿고 있는 가족은 나를 끝까지 지켜줄 존재인가.’ 란 의문이 이어졌고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특히 중년으로 접어 들면서 부모 세대의 장례를 자주 접하면서 ‘고인이 차마 보지 않아서 다행이겠다.’ 싶은 가족간의 갈등을 왕왕 목격할 수록 나의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아마 가족의 단단한 결합은 자식이 분가하기 전까지 인 것 같다. 자식들이 분가하여 자기 가족을 만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본가와의 관계는 소원해지며 간단한 안부를 묻는 일마저 뜸해진다. 이러한 변화되고 있는 가족의 붕괴를 최근 급증하는 고독사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영상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13.JPG

<후손들에게>_2019_40:00_이원형 협업_싱글채널


처음엔 이렇게 가족 관계의 단절로 인해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문제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 한국에 처음 유품정리업을 시작한 유품정리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독사는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결과적인 측면을 의미하지만, 오랫동안 고립된 상태에서 방치되다가 사망하는 것은 고립사라 할 수 있다. 즉, 사망하는 순간에 가족이 함께한다고 해도 고인이 단절된 상태로 고립돼 있었다면 그것은 고립사인 셈이다. 고독사는 고립이라는 원인에 의해 이르게 되는 결과인 셈이다. 아무리 가족이 한 집에서 살아도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다면 충분히 고립사는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간의 소통이 없는 가족은 모두 고독사의 대상이 된다.

 

어느 효자 형제는 시골에 계신 어머님이 홀로 되자 도시의 자기들 집 근처로 어머니를 모셔왔다. 앞, 옆 동에 아들들이 살았고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자식들을 볼 수 있는 거리임에도 어머니는 홀로 쓸쓸히 돌아가셨다. 유품정리인인 김석중씨는 이것은 자식들이 부모님이 원하는 것 보다 자식들이 자기들 편한 대로, 자기들 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자식들은 그저 혼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불편한 맘 때문에 노인들의 지역사회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미쳐 보지 못했다. 자기들 불편을 최소화 하기 위해 부모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셈이다.

또한 홀로 살아온 사람들 보다 둘이 사는 사람들의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것은 ‘우리는 둘이니까 안전하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안심하다 배우자가 죽어 밀려오는 우울감과 상심감을 혼자선 감당하기 힘들며 이들이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사람이 된다.

 

결국 사람은 혼자가 된다. 그것이 대가족의 일원으로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연락이 소원한 관계라면 한 집에 살아도, 아무리 가까운 거리에 살아도 안전하지 않았다. 유품정리사를 비롯한 장례지도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역공동체 사회의 작은 장례의 준비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태어날 때 혼자 힘으로 태어날 수 없듯이 죽을 때 역시 혼자서 삶을 마칠 수 없다. 결국 사람들을 서로서로 봐줄 우리가 필요한 셈이다.

 

 

내가 한국 사회의 ‘우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면 사람들은 의례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지적한다. 그러나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것과 사생활 자유를 갖는 것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가 강화될수록 사생활의 자유는 커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공동체는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울타리를 쳐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셈이다. 각 개인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희생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자체로 안심 할 수 있는 인간 울타리 말이다.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울타리..
결국 우리는 우리(Cage)에서 나와 서로의 울타리가 돼야 한다.


고(故) 임세원 의사의 유족이 그의 장례를 마치고 지인들에게 보낸 답례 편지에 이런 글이 있다.

 

“이렇게 어느 순간 우리는 무언가가 되고 무언가가 된 우리를 지켜주고자 또 다른 우리들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

 

우리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고,

우리는 같음이 아닌 모두 다른 사람들이며,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따로 때론 같이,

일곱 가지 색이 모인 무지게이여야 한다.

 

 

2019.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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