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어떤 예술가들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리고 나도 내가 겪은 것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경험하지 않는 세계를 지어낼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나의 작업과 글은 나처럼 어떤 특별함이 없는, 평범한 일상에 지쳐버린 사람들일 수 밖에 없고, 프로젝트에서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들도 예술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당신이 당신 삶의 주인공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고 믿는 것들이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과 껍데기만 남은 사람들에게 숨이 막힌다. 
 
 어쨌든 내의 작업과 글을 포함하여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보는 내내 나의 삶이 투영되어 보이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즉 작품을 통해 작가나 감독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고, 기왕이면 나와 닮은 사람에게 공감한다.
물론 완벽한 구성과 치밀한 내용, 뛰어난 상상력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는 작품들도 있지만 그런 작품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자 재능 없는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그런 작가들이 부러우면서도 갈수록 그런 작가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몹시 염려스럽다. 
최근 알게 된 다큐 영화 Life in a Day(2011)는 여러 면에서 공감하는 바가 컸다.
 
영화는 Youtube 유저들에게 2010년 7월 24일 하루의 일상을 담은 영상들을 모집했고 192개국 8만명이 보낸 4500여 시간에 달하는 수백 가지 다른 7월 24일이 도착했다.
영화의 주인공도, 줄거리도 모두 나와 같은 평범한 이들의 것이었다 . (물론 25명에 달하는 감독들의 편집이 필요했다.)
영화를 보며 올해 쵝근 내 개인전에 대한 한 비평가가 '홈 무비가 다큐가 될 수 있냐'는 평이 떠올랐다.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비평일 수도 있으나 생각해보면 내 작업들이 완벽한 플롯을 가지고 치밀한 구성아래 목적 의식이 뚜렷한 사회적 비판을 담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뛰어난 연출력을 가진 재능 있는 작가도 아니기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작업들은 우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제작하지 않았고 오히려 순간순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내면과 주변에 대한 기록적 측면이 강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감정은 귀찮고 무뎌지고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 조차 힘이 든다. 훗날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같은 감정과 생각을 가질지 내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내면이 육체보다 더 빨리 지쳐가고 무뎌지는 것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웬만한 사건 사고는 놀랍지도 않고, 사람에 대한 기대도 없다.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짓이고 일어나선 안 되는 일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오직 믿을 구석은 돈뿐이란 사람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도 없다. 그냥 다 놔버리게 된다. 
 
오늘도 전혀 접하지 못했던 신세계들이 태어난다. 저마다 새롭고 놀라우며 미래는 바로 자신들에게 있다고 떠든다.
문제는 그들이 진짜 신세계라 할지언정 만사가 귀찮은 나에겐 공허할 따름이다.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눈에 보이지도, 관심도 없다. 
이런 와중에 영화 Life in a Day는 잠자던 내 신경을 건드린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는 초라한 하루에서 나는 왜 눈을 뗄 수 없었을까. 마치 CCTV 속 나를 보는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다. 
특히 특별한 하루를 꿈꾸며 빗길을 퇴근하는 마지막 사람의 얼굴은 오늘을 견디는 흔한 한국인들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lif1.JPG
 
" 토요일에 하루 종일 일했어요.
슬픈 건 멋진 일이 생기길 바라면서 하루를 보냈다는 거예요. 뭔가 대단하고 감사한 일 말이에요.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온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일은 늘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오늘 저에겐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어요 .
전 사람들이 제 존재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존재감 없이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전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전 그냥 평범한 삶을 사는 평범한 아이일 뿐이죠.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고 특별한 점도 없죠. 
하지만 전 그게 좋아요.
그리고 비록 오늘
멋진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뭔가 뭔진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뭔가 뭔진 일이 생길 것 같다며 불안이 가득한 얼굴로 천둥번개 속을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끔직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하다.
 
미래가 정해진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지루한 이들도 없다.
나는 사람들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고 사람들은 내 작업에서 잃어버린, 망각하는 자기(自記)를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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