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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phy_2011_encyclopedia, trophy,w ood_30x30x280cm_SeMA Collection

트로피_백과사전, 트로피, 나무_30x30x280cm_2011(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내게는 세 명의 형제가 있다. 오빠, 언니, 남동생. 게다가 우리는 연년 생이어서 대학을 다닐 때 1, 2, 3, 4학년으로 학교를 다녔다. 아이들이 대학생 자식이 넷이란 말에 등록금 때문에 아버지 힘드시겠단 말을 자 주했고, 그래서인지 매 학기 등록금을 낼 때면 매우 죄송했다.   다행히 우리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선 부모님께 더 이상 도움을 받지 않게 되었지만 집안 곳곳엔 부모님이 아이 넷을 위해 노력하신 흔적이 남아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백과사전 전집(全集)이다.   어머니가 우리가 초등학교 때였을 때, 또 어느 동네 친구 엄마의 꾐에 빠져 구입하신 정말로 두껍고 무거운 백과사전이다. 다른 부모님과 마 찬가지로 우리 어머니는 특히 책에 있어선 욕심을 많이 내셨다. 아이들 에게 어떤 책이 필요한지 생각해서 구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 이 다 가지고 있으면 우리 아이에게도 필요하다는 식이었다. 그 중에 으 뜸이 바로 이 전집 백과사전이다. 이 책이 집으로 배달되어 책장에 들어 오는 순간, 뿌듯해 하시는 엄마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십여 년 뒤의 자식들을 모두 좋은 대학에 넣어줄 귀인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내 기억엔 이 전집은 적어도 3년 이상 어머니가 곗돈을 부어서 장만하신 거였다. 짐작하겠지만 연년생 아이들 넷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은 상상 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쪼개고 쪼개서 장만한 거였으니 얼 마나 소중하고 귀했겠는가.   하지만 불행히도 얼마 가지 않아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이 사전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구식이고 무겁기까지 게다가 정보 서적이 갖추어야 할 최신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백과사전은 점 점 더 구석으로 몰려 어느새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한참 흘러 남동생이 장가를 가고, 그 방을 내가 쓰게 되면서 방 안 구석 창고에 처박혀 있는 사전을 발견했다. 나 역시 그 동안 모은 책 들이 많은 터여서 이 책들을 더 이상 창고에 조차 둘 수가 없을 것 같 아 당장 분리 수거물에 내다 놓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몇 시간 지 나지 않아 내다버린 그 사전이 다시 집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였다.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버리지 말라고, 너희들이 안 본 다면 안방에 두고 자신이 심심할 때 마다 보신다.’며 서운해 하셨다. 아무리‘ 이 책은 더 이상 가치가 없고,  자리만 차지할 뿐’이라고 이야기 했 지만 소용이 없었다.   문득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저 화려한 백과사전이 우리 집으로 의기양양 들어와 책장 중앙에 꽂히는 장면을 챔피언 트로피처럼 보시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이 사전은 단순한 백과사전이 아니 라 자신의 의지의 승리인 셈이다. 살 것 안 사고, 쓸데 안 쓰고, 아이들 을 위해 견디고 견딘 엄마의 승리의 상징인 것이다.

결국 이 사전은 지금 안방 베란다의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화초들과 함께 있다. 엄마에게도 이 사전은 그 존재로써 뿌듯한 것이지 그 내용을 애써 보고 싶으시진 않으신가 보다.

 

-에세이<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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