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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겨있는 방 (the Locked Room)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_강효연

 

 
“당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사람)을 잃어버린 이유는?”, “그 모습을 기억하나요? (모습을 서술해 주세요)”
 
박혜수 작가의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서 접하게 되는 질문들이다.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시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특히 이번 전시는 위 질문들을 토대로 국내외 누구든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설문조사를 통해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작품과 연계하여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기억을 그저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획득된 답변들이 추억을 상기하고 기억해내는 과정을 요구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자신의 모습, 타인과의 관계를 깨닫게 하는 배움의 과정을 내포하고, 작품들은 다양한 이야기로 전개되어 펼쳐진다.
설문에 답한 사람들의 답변은 다양했다. 자신감, 미소, 건강, 꿈, 사람에 대한 믿음, 설레임, 지갑, 친구, 등등 추상적이고 구체적이며 의미심장하기도 하고 때론 서글픈 답변들로 개개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의 것들이 많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박혜수의 작업 성향을 간단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건 하나로 귀결되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묻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시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작가의 의도를 보다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두개의 소주제로 구분지어 접근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가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여성의 감수성과 시간선상에서 해석된 개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라면, 두 번째는 기억이라는 ‘시간성’1)에서 획득된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하며 잃어버린 시간 찾기의 주된 과제를 작품들을 통해 만나게 될 것이다. 
 
 
잠겨있는 방
 
《잠겨있는 방》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 방을 열어야 할 것 같은 충동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발생되어지는 것만은 아닐 것 같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잠재되어있던 내면의 세계를 드러냄은 물론 타인의 고민까지 공유하며 실존주의 철학자와도 같이 현존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우선, 작가가 제시한 전시타이틀에서 느낄 수 있듯이 ‘방’이라는 공간의 제시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분히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2)이나 그리스신화에서의『판도라의 상자』3)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잠겨있는 공간, 심리적 갈등의 대상이자 사유의 공간으로 대치되어지는 단어의 제시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작품, <사람의 집>은 작은 집 모양의 오브제와 타조의 깃털과 설탕으로 만든 민들레 홀씨 모양의 둥근 오브제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위해 사용된 재료와 형상은 자유로울 수 없는 상징적인 대상물들이다. 작가는 현실에서 만나는 허망함을 노래하듯 방향도 없이 바람 따라 떠다니는 민들레 홀씨와 날개는 있으나 땅위에서 살아가는 타조를 보며, 본인의 처지,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위치, 인간의 한계, 현실의 무게를 자화상과도 같이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날 수 없는 타조와 땅에 붙어있는 집을 공중에 띄우는 것으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알베르 카뮈의 문학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 의지, 시지프스의 신화4)를 극복하려는 의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시도가 박혜수의 작품에도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숨은 시간의 방>이란 작품은 방(전시장의 작은 방)에 들어서면 환기구를 통해 새어나오는 빛과 들려오는 소리-인기척-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서면, 빛도 인기척도 사라지게 된다. 가만히 30초 정도 서 있으면 인기척은 다시 들려온다. 다시 움직이면 사라지고, 멈추면 다시 들려오는 아련한 소리들, 바로 인간 생활에서 발견되어지는 소리이자 기호들이다. 평소, 우리는 벽을 사이에 두고 귀 기울이면 옆방이나 이웃집에서 또는 밖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무수한 소리들, 인기척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얼핏 ‘공간지각’5)적인 사고를 유발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억해서 유추해 낼 수 있는 찾기의 근원들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방이라는 공간은 독립적이고 사적이며 고독한 공간으로 보여진다. 그럼, 왜 ‘숨은 시간의 방’일까. 하이데거에 의하면 ‘시간성’은 서로간의(타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존재론적 의미를 가진다.6) 시간은 공유되어질 때 그 가치가 있는데 시간이 ‘숨었다’ 혹은 ‘멈추었다’는 것은 어떤 대상과의(타자와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이다. 바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시점으로 시간이 멈춘 공간 즉,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시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들려오면 우리는 주변상황에 관계를 시도한다. 바로 빈 공간에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님을 깨달을 때에 관계성을 드러내며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되찾은 시간, 어떤 배움의 이야기
 
질 들뢰즈의 지적처럼 ‘찾기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고 있다’. 다시 무언가를 기억해 내는 것은 작가의 말대로 후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찾기’의 일환으로써 어떤 근거를 통해 미래를 향하는 배움의 한 양상을 의미한다.7) 박혜수의 작품들-<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시간 창고> 그리고 <잊혀진 그래서 잃어버린 사람들>-에서는 시간에 대한 탐구, 기억에서 출발해 발견되어진 기호들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기호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회상하고 추억하며 반성하는 과정 속에서 배워나가는 대상으로서의 기호이다. 
 
<잊혀진 그래서 잃어버린 사람들>이란 작품은 작가가 사진 속에 남겨진 대상이나 장소를 묘사한 것이다. 희미한 어릴적 기억의 장소와 사람들을 아크릴판 위에 바늘로써 형상을 그려내고 그 아크릴판 위에 물을 붓고, 그 위로 빛을 투사해 벽면에 그 형상들이 그림자 소묘로 보여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타인을 통해 획득된 기억의 파편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억의 파편들은 사물들, 사람들, 이름들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진 기억의 내용들을 사유해가는 시도이자 배움의 연속성을 나타낸다. 기억의 묘사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교집합을 이룬다. 시간 선을 따라가다가 보면 그 선 위에서 간섭하고 서로 작용하며 서로 익혀가는 배움의 선들을 만들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이란 작품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하지 않는 질문, 불편한 질문들을 드러내고 분쇄해서 지우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천장을 이용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롤 페이퍼 양쪽에 타자기와 수동파쇄기가 연결되어 설치되는 작품이다. 작가가 평소 느꼈던 것들 그리고 책에서 인용한 것들 중에서 찾아낸 문구들을 타자기로 쓰면 건너편에 파쇄기에 의해 분쇄된다. “당신의 꿈은 이루어졌는가.”, “무엇이 당신을 변화시키는가.” 등등. 이 작품 또한 본인 스스로에게 건네는 질문이면서 타인과의 관계,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사람들의 대답을 판넬 위에 연필로 썼다가 모터에 의해 지워지는 <시간 창고>란 작품이 있다. 꼭 시계 바늘이 판넬 위에 질문들을 지워가듯이, 시간 창고에 남겨질 우리의 기억들이 잊혀지듯이 사라지고 있다. 시간은 본래 존재의 의미를 인정해주는 매개이다.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시간 속에서 탐구되어지는 자아성찰이자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과정과도 같다. 이 작품은 시간이라는 매개와 기억의 속성을 드러내며 되찾은 기억들을 다시금 지우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기호들을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기억하는 자세, 반성하는 자세는 인간에게 주어진 필요조건인지 모른다. 우리는 박혜수의 작업 속에서 설문조사와 기억을 찾아가는 시도를 통해 작가 개인의 성찰은 물론 존재의식의 행보를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작가 박혜수에게 시간에 대한 탐구는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가듯이 과거의 장면들을 찾아 나서는 노력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의미심장한 질문들은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활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삶의 흔적들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 흔적들을 기억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지를 묻는다. 또한 이 기억의 대상(양상)들은 타자(개체)에 의해서 보여지는 것이기에 ‘상호관계성’을 드러낸다. 결국 타자(개체)는 세계를 체험하는 우리 의식의 근본 구조를 가능하게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되찾은 시간’은 자전적인 이야기이면서 작가와 관계되어지는 기호들(사람, 사물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의 조합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조형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기에 작가의 시도가 예술작품으로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부서지고 아파도 해낼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열정이 작가 박혜수에게는 있다. 끝으로 예술에 대한, 삶에 대한 작가의 의지가 작품으로 꾸준히 표출되어지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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